mentalese 위치로그  |  태그  |  방명록
도덕 에 해당하는 글5 개
2007/10/28   종교와 도덕 (4)
2007/10/03   도덕적 접근의 통속성 #2
2007/09/30   도덕적 접근의 통속성 (3)
2007/07/01   성악설과 자본주의 (1)
2007/05/17   도덕적 보상 체계 (5)


종교와 도덕
분류없음 | 2007/10/28 19:24
http://www.edge.org/3rd_culture/haidt07 ··· dex.html
http://www.edge.org/discourse/moral_religion.html

종교는 사람들을 더 도덕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도덕도 도덕 나름이다.

예를 들면,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 ··· %3D22767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188169

태그 : 도덕, 어리석음, 종교
트랙백0 | 댓글4



도덕적 접근의 통속성 #2
분류없음 | 2007/10/03 01:53
도덕적 접근의 통속성

윗글에 대해 세 가지 반응이 있었다. 하나의 반응은 트랙백한 "도덕에 관한 회의"와 윗글이 무슨 상관이냐는 것[반응1]이고, 또하나의 반응은 '현미'님이 댓글에 단 것과 같이 도덕 판단이 직관적이고 쉽다는 데 대한 의문[반응2]이 들고 도덕적 접근이 다른 의미에서 효과를 지니는 것이 아니냐[반응3]는 것 이다. 이 반응들에 대해 각각의 답변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반응1]에 대한 답변:

먼저 Arouet님의 "도덕에 관한 회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자연법적인 도덕체계"를 바탕으로 "인간들이 서로를 폭력으로 제압하기보다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고 있다. 이 회의는 자연법적인 도덕체계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있다해도 개인을 짓밟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덕적 접근의 통속성"에서 말한 '도덕적 접근'은 사회적 문제가 개개인이 그러한 '자연법적 도덕체계'로부터 일탈한데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교정하는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접근 방법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폭력적인건 둘째치고 효과부터 의심스럽다는 게 "도덕적 접근의 통속성"의 내용이다.

[반응2]에 대한 답변:

우리 삶에서 내려야하는 대부분의 도덕 판단은 도덕 직관에 의해 결정된다. 도덕 직관은 언어 직관과 마찬가지로 의식적인 과정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한국어를 말하는 게 숨쉬듯 자연스럽듯이 보성에서 사람 4명을 죽인 어부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고 혐오감을 내기 위해서 의식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아이들의 경우 만 3~4세경이면 결과는 같지만 의도가 다른 행동에 대해 도덕 판단을 달리 하거나 사회적 관습과 도덕을 구분할 수 있고 만 4~5세면 법학에서 말하는 비례의 원칙을 판단에 적용할 수 있다. 도덕 판단은 결코 어렵지 않다.

도덕 직관은 추상적 사고에 의한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데 이게 실패했을 때 도덕적 딜레마가 생겨난다. 이런 딜레마는 그렇게 흔치 않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은 추상적 사고에 의한 정당화, 요컨대 반성적 사고를 하며 사는 경우조차 드물다.

[반응3]에 대한 답변:

반응3을 요약하자면 도덕적 접근이 문제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어차피 그게 목적이 아니고 개인의 도덕성으로 문제를 돌려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감추고 기존 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지배층의 의도 때문에 통속적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예는 허다하다. 유대인 때문에, 빨갱이 때문에, 누구 때문에 등등. 그런데 이것이 도덕적 접근의 통속성의 한 배경을 이룰지라도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에 도덕적 접근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통속성의 원인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도덕적 접근은 지배층이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데도 별로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체제를 유지하려면 어쨌든 문제를 해결하든 완화할 필요가 있는데 도덕적 접근은 호도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금방 한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지배층은 다른 호도책들 중에서 도덕적 접근을 선호하며, 대중은 거기에 가장 잘 속아 넘어가는지 설명되야 한다.

답은 간단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1차적으로 도덕적 접근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꾸로 지배층을 공격하고 체제를 뒤집어 엎고자 할 때조차 도덕적 접근을 하는 데서 드러난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를 악당, 파렴치한으로 묘사하고 페미니스트들은 마초에 대한 도덕적 혐오감을 드러내지만  자본주의나 가부장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지배층이든 대중이든 자본가든 사회주의자든 마초든 페미니스트든 모든 사람들이 도덕적 접근을 한다.

태그 : 도덕, 심리학, 언어
트랙백0 | 댓글0



도덕적 접근의 통속성
분류없음 | 2007/09/30 20:04
※ Arouet님의 도덕에 관한 회의에 트랙백

어떤 사회적인 문제가 있을 때 사람들은 흔히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결함이 있으며 교육이나 계몽,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블로그 바닥에 나돌아다니는 글들도 대부분은 이런 식이다. 심지어 신문이나 텔레비전 같은 공식적 매체에서도 이런 주장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도덕적 접근의 통속성은 스스로가 사회 문제에 대한 현명한 접근법이 아닌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회 문제는 제도, 역사, 경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개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판단이 가장 앞서냐하면 도덕 판단은 다른 종류의 판단과 달리 별 노력없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는 대단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마음은 가능하면 적은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제도나 역사에 대한 판단은 인류 역사에서 지극히 최근에 등장했기 때문에 뇌에는 이것을 처리할 전문적인 회로가 없다. 따라서 여러 가지 기능들을 복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도덕 판단은 Pan속의 동물들이 무리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진화적으로 적응된 능력이다. 침팬지들에게 도덕 판단을 요구하는 문제들에 대해 인간과 거의 똑같은 판단을 내린다.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은 5~7백만년 전에 존재했기 때문에 도덕 판단 능력은 그 이전에 생겼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다른 인지 기능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도록 구축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고 빠르게 도덕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반대로 다른 인지 기능이 도덕 판단에 개입하기가 무척 어렵다.

최근 인지과학계에서는 도덕과 언어가 비슷한 구조와 원리를 따른다는 '보편 도덕 문법(Universal Moral Grammar: 줄여서 UMG)' 이론이 관심을 끌고 있다. UMG는 사회문제에 대한 도덕적 접근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간단히 말해 사람들의 도덕 판단을 교정하려는 시도는 바른 말 쓰기 운동에 비견될만하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문법적으로 말을 한다. 이 문법은 물론 학교 문법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바른 말, 표준어 등은 학교 문법인데 이것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암묵적 문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흔히 '어감이 이상하다'라고 표현한다. 학교 문법은 암묵적 문법을 정합성이 있게 고친 것인데 암묵적 문법에는 이런 정합성이 없기 때문에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도덕 판단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주장되는 도덕률은 사람들의 직관적인 도덕 판단을 토대로해서 정합성을 갖춘 체계를 만든 것인데 직관적인 도덕 판단 역시 이런 정합성이 없다. 도덕적 보상체계에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도덕 감정은 '합리적' 잣대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것이다. "몰고가던 트럭의 브레이크가 고장나는 바람에 5명의 아이를 피하기 위해 1명의 아이를 친 운전사"의 행동은 90%의 사람들이 도덕적이라고 응답하는 반면, "당장 장기를 이식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구할 수 있는 장기가 없는 5명의 중환자를 살리기 위해 무고한 1명을 납치, 살해하여 장기를 적출한 의사"의 형동은 90%의 사람들이 부도덕하다고 응답한다. 숫자만 따지자면 똑같이 5명을 살리고 1명을 죽였는데도 말이다.

아나운서나 성우들처럼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 표준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게 되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그런 노력을 강요하기는 어렵다. 인류 역사에서 전국민의 도덕 판단을 교정하려는 실험을 했던 체제가 있었지만 그 참혹한 결과는 그 체제마저도 완전히 공중분해시켜 이제는 한반도 북부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만 겨우 남아있다.

언어는 바로 말로 실현되는 반면에 다행스럽게도 도덕 판단은 바로 행동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뻔히 알면서도 잘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도덕 판단을 교정하지 않더라도 행동을 수정할 수는 있다. 미국에서 음반 대신 MP3를 팔 수 있게 된 것은 사람들이 저작원에 대해 새로운 각성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MP3의 임의적인 유통을 법적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한편 사람들이 불법복제할 때보다 더 쉽게 음악을 다운받아 MP3 플레이어에 넣을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를 도덕적으로 해결하려고 드는 습성은 120명 정도가 집단을 이뤄살던 구석기 시대에 생겨난 것이다. 신석기 시대로 접어든지도 불과 2만년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를 여전히 그런 식으로 다루려는 강렬한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블로그나 신문, 잡지에 글을 쓰거나 텔레비전에 나와 말을 할 때 그런 유혹을 살짝 접어두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이돌 가수들도 평소에는 어떨지 몰라도 방송에 나올 때는 표준어까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비속어는 사용하지 않는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불행히도 표준어의 경우와 달리 우리 사회의 보상체계는 구석기적 본능에 굴복할 것을 권장한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접근보다는 도덕적인 접근을 선호하고 공식 매체에서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원고청탁과 출연요청을 받고 책이 팔리고 블로그 접속자 수가 는다. 난망한 일이다.

태그 : 도덕, 문법, 심리학, 언어, 인센티브, 진화
트랙백0 | 댓글3



성악설과 자본주의
분류없음 | 2007/07/01 23:38
종종 성악설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주장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인간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인간 본성이 구체적으로 어떤지 파악해야 한다. 그 다음에 특정한 도덕적 관점을 취할 때 그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성선설과 성악설은 이 단계들을 모두 뛰어 넘어 인간 본성에 대해서도 도덕적 관점에 대해서도 답하지 않고 바로 결론에 도달한다. 맹자나 순자가 이런 비약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가지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가?

또, 사람들이 종종 오해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전제는 인간의 악한 본성이 아니라 '이기적'인 본성이다. 이 두 가지는 분명히 구별지어야 한다. 이기적인 것은 악한 것이 아니다. 특정한 상황 아래서만 그렇다. 반대로 또 어떤 상황에서는 이기적인 행동도 선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은 자본주의가 바로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포함하는 시장경제에서 거래는 항상 당상자 모두의 이익을 증진시킨다. 따라서 거래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익 또한 증진시킨다. 직관에 반하게도 시장경제에서는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가장 선하다.

이런 오해는 아마도 심지어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조차 그 현실은 서로에게 이익이되는 아름다운 거래가 아니라 악다구니가 난무하는 복마전이라고 은연 중에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생기는 게 아닐까.

태그 : 경제학, 도덕, 인간, 자본주의
트랙백0 | 댓글1



도덕적 보상 체계
세계 | 2007/05/17 14:47
보상은 특정한 행동을 촉진시키기 위한 '당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덕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국가유공자 유가족에게 보상을 하는 것은 특히 두 번 째 의미가 더 크다. 독립운동가들이 자기 자식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공무원에 특채될 걸 바라고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종류의 보상이라고 해서 첫 번 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기업은 폭리를 취할 수 없다. 상품의 가격은 적어도 소비자로 하여금 물건을 살만큼, 기업은 팔만큼 되는 선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소비자들은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고 해도 그 값 아래로는 기업 쪽에 보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폭리는 아니다.

폭리라는 개념은 경제적 원리가 아니라 도덕 감정에서 비롯한다. 교환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작은 집단을 이루고 살았던 구석기 시대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운영 방식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도덕 감정은 '합리적' 잣대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것이다. "몰고가던 트럭의 브레이크가 고장나는 바람에 5명의 아이를 피하기 위해 1명의 아이를 친 운전사"의 행동은 90%의 사람들이 도덕적이라고 응답하는 반면, "당장 장기를 이식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구할 수 있는 장기가 없는 5명의 중환자를 살리기 위해 무고한 1명을 납치, 살해하여 장기를 적출한 의사"의 형동은 90%의 사람들이 부도덕하다고 응답한다. 숫자만 따지자면 똑같이 5명을 살리고 1명을 죽였는데도 말이다.

변덕스럽든 어쨌든 간에 이 도덕 감정 또한 끌어안고 가지 않으면 안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 방식이다. 보상 체계는 필요한 행동을 촉진시켜야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기도 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미국의 노예들은 상식 밖에도 상품 소비에선 백인 농촌 노동자를, 평균 수명에선 백인 도시 노동자를 앞질렀지만 '짧고 가난한 삶'을 찾아 북부로 도망치곤 했다. 그 누적적인 결과는 최종적으로 남부 노예주인들의 길고 부유한 삶까지도 끝장내버렸다.


태그 : 경제학, 도덕, 심리학, 역사, 인센티브
트랙백0 | 댓글5



[PREV] [1] [NEXT]
관리자  |   글쓰기
BLOG main image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들
- 댓글을 달기 전에
전체 (316)
마음 (59)
자연 (69)
도구 (26)
시간 (12)
세계 (72)
자아 (40)
오일러 인센티브 도덕 도구 확률 철학 아프가니스탄 종교 과학 자본주의 영어 역효과 어리석음 만년필 TeX 음악 과학의 탈 유전자 낚시 심리학 심리검사 물리 공감 진화 언어 엔트로피 스팸 성경
블로그 옮겼습니다
민주화 (4)
말뚝 (3)
고등어 세 마리 (3)
과학과 도덕 (1)
펜은 칼보다 강하다. 정말 맞..
02/09 - 만년필
다들 설마 저걸 진짜로 진지하..
2007 - kritiker
다른 의미에서 제목이 아주 적..
2007 - 한윤형
아하하하하하하.
2007 - 까막
아...
2007 - Arouet
Tir-fot-Tat과 윤리(3)
나를 숨기는 것은 얼마나 가능..
세상이 돌아도 대세는 원더걸스
묻지마
약간 짜증이 나는 허튼소리
'명랑노트' 시즌 2. 두 번째..
빙글뱅글
마음 하나, 이야기 하나
Africa
마음 하나, 이야기 하나
Total : 551671
Today : 177
Yesterday : 318
태터툴즈 배너
rss
 
 
 
위치로그 : 태그
’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com / Designed by plyfl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