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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자연/통계학 |
2006/09/0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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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나머지 다른 학문의 영역에 넘어간 개념들치고 온전한 원래 모양을 지키는 경우가 드물다. 엔트로피도 예외는 아니다. 물리학에서 태어난 엔트로피는 정보이론과 수학의 땅을 거쳐 이제는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일종의 종말론적 경구가 되었다.
엔트로피는 골고루 섞인 정도를 말한다. '무질서한 정도'가 더 정확한 설명이지만 물리학에서 '일'이나 '힘'이 일상 언어에서 '일'이나 '힘'과 다르듯이 '무질서'의 의미도 일상 언어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물에 잉크를 떨어트리면 잠깐 동안은 뭉쳐있다가 곧 골고루 섞이고 만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말은 (더 정확히 말해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가리킨다.
기계를 작동시키면 열이 발생한다. 바꿔말하면 연료에 있던 화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어서 공기 중에 골고루 섞이게 된다. 그러니까 에너지를 사용하면 엔트로피가 높아진다. 미지근한 물이 뜨거운 물과 찬 물로 저절로 나뉘는 일이 없듯이 엔트로피를 높이고 나면 그 에너지는 다시 쓸 수 없게 된다. 엔트로피가 종말론적 경구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주에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지만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점점 줄어든다.
에어콘을 켜면 안팎에 골고루 섞여있던 더운 공기가 집 안의 찬 공기와 바깥의 뜨거운 공기로 나뉘니까 엔트로피가 낮아진다. 하지만 에어콘을 작동시키면서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엔트로피는 높아진다. 둘을 더하면 엔트로피의 총량은 높아진다. 아주 좁은 범위에서 단기간에는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있지만 큰 범위에서 장기간에는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만다.
엔트로피는 단지 골고루 섞인 정도를 말하기 때문에 물리학적 대상이 아닌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 로또에서 숫자들이 1,2,3,4,5,6처럼 몰려나오는 엔트로피가 낮은 경우는 흔치 않다. 8백만 가지나 되는 경우 중에 엔트로피가 최저인 경우는 37가지에 불과하다.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이유는 이처럼 엔트로피가 낮은 경우보다 높은 경우가 더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로또는 4천년에 한 번 꼴로 엔트로피가 최저가 될 수 있다. 이 4천년을 푸엥카레 주기라고 한다. 숫자가 42개 밖에 안되는 로또니까 확률이 800만분에 37, 0.0000046이라서 이 정도지 분자가 600000000000000000000000개 들어있는 물 18g이 찬 물과 뜨거운 물로 나눠질 확률은 0. 하고 0이 16000000000000000000000000개 붙은 다음에 1이 하나 있는 숫자다. 그 푸엥카레 주기는 ... 이제 0을 쓰는 것도 귀찮다.
리드미 님(웹과 엔트로피)과 김중태 님(웹 엔트로피 줄이기)은 펌질이 웹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고 주장했다. Sieg님은 "정보와 엔트로피는 같다"라는 지금은 지워진 글에서 펌질은 웹의 엔트로피를 거의 증가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두 주장 중에 어느 쪽이 옳을까. 답부터 말하면 둘 다 맞다.
엔트로피는 골고루 섞인 정도를 말할 뿐이지 '무엇'이 섞여있는 지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물과 잉크일 수도 있고 로또 번호일 수도 있다. 웹에 적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김중태님과 리드미님의 엔트로피는 자원과 에너지의 엔트로피다. 펌질을 하면 더 많은 하드, 더 많은 서버,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고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그런데 새로운 글을 써도 자원과 에너지를 사용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에 엔트로피는 여전히 증가한다. 단지 펌질보다 엔트로피를 덜 증가시킬 뿐이다.
Sieg님의 엔트로피는 정보의 종류에 대한 엔트로피다. 엔트로피는 3:3인 경우보다 2:2:2인 경우에 더 높다. 같은 정보를 펌질해도 웹에 있는 정보의 '종류'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엔트로피는 변하지 않는다. 이 경우엔 새로운 정보를 올리는 게 오히려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관점을 달리하면 펌질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도 있다. 정보의 종류가 아니라 글의 종류라고 생각해보자. 무슨 차이냐하면 위키피디아에 있는 '엔트로피'와 네이버 백과사전에 있는 '엔트로피'는 똑같은 정보지만 다른 글이다. 펌질을 하면 정보의 종류는 변하지 않지만 글의 비율은 변한다. 누군가 네이버 백과사전에 있는 엔트로피를 다른 곳에 퍼나르면 1:1이던 글의 비율이 2:1로 변한다. 계속 퍼나르면 글의 비율은 100:1, 1000:1이 될테고 엔트로피는 계속 감소한다.
"펌질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그러니까 나쁘다"라는 주장은 "펌질이 나쁘다"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한에서 좋은 얘기지만 이런 점에서 과도할 수 있다. 엔트로피의 증가가 항상 나쁜가? 엔트로피는 에너지 사용의 결과다. 게으름뱅이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지 않는다. 문제는 엔트로피의 증가가 아니라 그 결과가 어떻냐는 것이다. 김중태님과 리드미님의 관점에서나 Sieg님의 관점에서나 검열과 유료화는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 그렇지만 나쁘다.
또 다른 측면에서 문제는 에어콘의 경우처럼 엔트로피를 낮추기 위해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엔트로피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링크는 펌질보다 하드 자원은 더 적게 소모하지만, 사이트 사이를 한 번 더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네트워크 자원을 더 소모한다. 검색은 웹 자체의 엔트로피는 획기적으로 낮춰주만 그 검색 서비스를 지탱하기 위해 들어가는 자원의 소모도 만만치 않다. 구글은 1년 전기 요금만 5천만 달러 수준이라고 한다. 결국 좁은 범위에서 엔트로피를 감소시켜주는 어떤 방법도 넓은 범위에서 전체적인 엔트로피는 증가시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좀 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어떨 경우에는 펌질을 또 어떨 경우에는 링크를 또 어떨 경우에는 검색의 힘을 빌리는 것이 정보를 가장 효과적으로 찾고 조직하면서도 자원과 에너지를 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조사 말이다. 하지만 이런 조사를 통해서 웹을 사용하는 최적의 방법을 알게 되더라도 그것을 적용할 수 있을지는 또 의문이다. 자동 펌질처럼 조사할 필요도 없이 낭비라는 걸 알 수 있는 웹 사용법이 오히려 더 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손 놓고 기다려보는 것도 어떨까. 아마도 영원에 가까울 푸엥카레 주기가 지나고 나면 웹의 엔트로피는 다시 바닥까지 내려갈 수도 있을테니까. 어쩌면 42 하나만 남을 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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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Experiments never fail 2006/09/06 13:23 x
제목 : 펌과 엔트로피
재미있는 논쟁이 있었나보다. 펌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느냐 아니냐. 정보공학에서 이야기하는 엔트로피(Information entropy)는 열역학 엔트로피(Thermodynamic entropy)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확장한 것.. |
Tracked from Cubic3 2006/09/07 15:54 x
제목 : 펌과 엔트로피에 대한 논의
요 근래 "'펌'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므로 옳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여러 블로거들의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서로 엔트로피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면서, 그 정의에 따라 입장이 대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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