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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옮겼습니다
분류없음 | 2008/01/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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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분류없음 | 2007/12/18 18:56
MB 지지율 유지의 이유를 제대로 까발린 글
한국인들은 지금 민주화도 관심없고 그 무엇도 관심없다.
추락하지 않고 현재 부여된 어떤 것을 유지하는 것에 목숨까지 건다.
그렇다면 그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지만 도덕성은 생겨난다.
노무현은 국민의 자질을 믿었으나 노무현에게 투표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누가 강남잡으라고 했지, 한채밖에 없는 내 집 재산깍아먹으라고 했어?"
여권은 국민들이 착하고 정의로워서 집값 안정과 서민을 위해서 부동산 내리기에 다 동참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 것은 없다.
정책은 힘으로 찍어눌러야 한다.
국민이 비도덕하다면 도덕성을 가르쳐야 한다.
이들은 마치 자신을 왜 혼내지 않았냐고 선생님에게 항의하는 학생이라고 보면된다.

이건 뭐, "한국적 민주주의 2.0"도 아니고.. 국민들이 민주화에 관심도 없고 비도덕하니 찍어누르고 가르쳐야한다는 게 무슨 민주화냐. 여당 지지자들 중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참담한 일이다.




태그 : 민주주의, 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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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
분류없음 | 2007/11/16 17:08
가족 중에 한 분이 교회에 '헌신'에 대한 글을 써내야해서 대신 좀 써달라고 내게 부탁을 했다. 성경에서 이야기 하나를 골라 대충 교훈적인 해석과 초등학생 독후감스러운 다짐을 덧붙이려고 성경을 여기 저기 뒤적거리다가 찾은 대목 하나.

"시스라는 지쳐서 깊이 잠이 들었다. 헤벨의 아내 야엘은 장막 말뚝을 가져와서, 망치를 손에 들고 가만히 그에게 다가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았다. 그 말뚝이 관자놀이를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죽었다."(사사기 4장 21절)

아. 이건 패스.

태그 : 농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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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세 마리
분류없음 | 2007/11/11 16:58

우리는 자연주의적 논증("A는 자연스럽다. 따라서 A는 도덕적이다.")을 대단히 많이 쓰고 있다. 이것은 좌파에게만이 아니라 우파도 마찬가지다. 기린아님의 지적처럼 자연주의적 논증은 자연이 도덕을 배신할 때에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따라서 도덕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기린아님의 결론은 이상하다. 먼저 원리적인 면에서 자연주의적 논증은 오류 논증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과학에 의해 도덕이 근본적으로 붕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주의적 논증이 그 자체로 옳지 않다고 해도 사람들이 자연주의적 논증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설득전략의 면에서도 자연주의적 논증은 생각보다 허약해서 간단히 논파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연이야 어떻든 어떤 도덕률을 주장하기 위해 윤리학에서도 일상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는 논법은 공리주의적 논증("A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다. 따라서 A는 도덕적이다.")이다. 동성애가 수용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동성애가 유전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 아니라 동성애자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린아님의 글은 자연주의적 논증에 대한 과도한 우려라고 본다. 그 글은 자연주의적 논증에 대한 우려를 넘어서 과학 일반에 대한 우려로 무리하게 전개하고 있다. 게다가 사실이나 논리에서도 결함이 있다. 나는 오히려 이 글이 읽기에 따라 잘못된 자연주의적 논증을 전파하게될 가능성(예를 들어 누군가 진심으로 소아성애나 동성애나 똑같이 도덕적 것이라고 믿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1) "과학은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를 지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통이나 종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지난 글에서도 말했지만 전통이나 종교 또한 진화적으로 적응된 형질이다. 만약 동성애가 자연스럽기 때문에 지지되어야 한다면, 전통이나 종교 또한 자연스럽기 때문에 지지될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는 같은 논리로 전통이나 종교를 지지한다. 우리에게 필요한(이 말 자체가 이미 공리주의적이다.) 도덕을 전통이 지지하고 그 전통을 과학이 지지한다면 결국 과학은 우리에게 필요한 도덕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2) "동성애는 유전적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이 아니다."

동성애가 병이 아니라는 것은 유전적 기원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잘못되었다. 첫째, 동성애가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에서 배제된 것은 1974년으로 이른바 "게이 유전자" 비슷한 것도 알려지지 않은 시기다. 그 사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지 동성애가 치료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둘째, 동성애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이 아니다. 단적으로 출생 순서에 따른 자궁 내 환경은 남자 태아가 동성애자가 될 승산(odd)을 33% 상승시킨다. 형이 11명 있는 남자 아이는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50%이다.

3) "친족 선택은 되갚기 전략의 특수한 경우다."

친족 선택은 rB − C > 0인 유전자의 빈도가 확산된다는 것으로 r은 친족의 유전적 연관도, B는 친족이 입을 이익, C는 내가 입을 손해를 뜻한다. 되갚은 전략은 상대방의 전략에 따라 나의 손익이 달라질 수 있는 게임이론 상황에서 상대방이 전략을 바꾸더라도 "내 이익"이 줄지 않는 균형전략이고 친족선택은 내가 입은 손해보다 "친족의 이익"이 크다면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다. 둘은 전혀 다른 얘기다.

또한 유전자는 친족을 알아 볼 수 없다는 것은 기린아님의 말이 맞다. 그래서 유전자는 친족이 있을 조건 하에서 희생적 행동을 하도록 개체를 프로그래밍한다. 예를 들어 어떤 조류는 무조건 자기 둥지에 있는 새를 돌본다. 왜냐하면 자기 둥지에 있는 새는 자기 새끼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용하여 다른 새들은 기생적 행동을 할 수 있다. 새끼건 기생하는 새건 무조건 이익을 보는 반면 부모새는 무조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것은 친족 선택이지 되갚기 전략으로 볼 수 없다.

4) "사람은 선긋기에 능하다."

사람이 진정으로 선긋기에 능하다면 종교나 지역처럼 거대한 집단에 충성심을 보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01년에도 목격했듯이 얼굴도 모르는 수억의 사람과 그들과 함께 믿고 있는 신을 위해 비행기로 빌딩도 들이받는 것이 사람이다.

기린아님은 되갚기 전략으로부터 배신자를 기억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는 120명, 일일이 개인을 기억하고 행동할 수 있는 범위는 1000명 수준이라고 알려져있다. 따라서 지역이나 인종처럼 거대한 집단 내에서만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되갚기 전략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선다.

앞서 글에서 소개한  실험은 3주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2주차에서는 집단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3주차에서는 두 집단을 다시 결속시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다른 조건에서 실시된 실험에서는 2주차의 격렬한 대립이 다시 1주일만에 해소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일련의 실험들이 시사하는 바는 이렇다. 첫째, 우선 사람들은 선긋기에 능하다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자신이 속한 집단을 가변적으로 구성한다. 둘째, 그 집단이 어떻게 구성되었든지 간에 사람들은 자기 집단이 어떤 본질을 공유한다고 믿으며 그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충성심을 보인다.

이 얘기는 (5)번으로 이어진다.

5) "사람들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집단끼리 뭉칠 것이다."

각각의 유전자는 독립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인간 집단을 어떤 방식으로 나누더라도 두 집단 사이에 유전적 차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간 유전자 풀이 A/B 이런 식으로 딱 나눠질 수가 없고 일련의 연속선 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어떻게 나누든지 모두 임의적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인종이라는 구분이 매우 자연스럽고 유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피부색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30여가지가 넘고 똑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도 같은 유전자에 의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인종'이란 개념은 과학적이기보다 사회적이다. 아일랜드인이나 이탈리아인은 미국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유색인종으로 분류되었다.

(4)에서 집단이 "어떻게 구성되었든지"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우리가 구성하는 인간 집단은 거의 모두 임의적이고 우연적이다. 나치는 유대인들과 독일인들을 외모나 행동으로 구별할 수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서 골치를 썩였다. 그럴법한 것이 유대인들은 천년 이상 독일인들과 혼혈이 되었고 또 독일 시민으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이스라엘)에 돌아왔을 때 그들 서로가 외모나 언어, 행동거지가 매우 다르다는 사실에 역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피부색을 지닌 사람이라고 해서 그다지 동질적이지도 않고 서로 별로 친하지도 않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는 미국 흑인들도 그대로 아프리카에 있었다면 서로 종족말살을 벌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사람들도 단일민족이라고 하지만 남방계와 북방계는 외모로 한 눈에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차이를 거의 의식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만약 훗날에 어떤 누군가가 한국 내에서 남방계와 북방계 사이에 인종주의를 선동한다면 그 의식할 수 없는 차이도 순식간에 눈에 띄는 차이가 될 것이다.

(6) "개인차가 유전자 차이에서 비롯된다면 우생학은 필연적이다."

이런 생각이 생겨나는 이유는 보통 환경적 차이는 환경을 개선해서 바꿀 수 있지만 유전적 차이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굴드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근시는 100% 유전이지만 싸구려 안경으로도 교정할 수 있다.

근시인들은 학교나 직장에서 안경을 쓸 수 있는 혜택을 누리지만 이것을 혜택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연예계에서 못난이가 성형수술로 외모를 고치거나 음치가 컴퓨터로 목소리를 조작한다면 비난을 받는다. 이것은 어느 것이 더 당연하고 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보철기술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태도에 기인한다. 우리는 낯선 보철기술에 대해 대체로 혐오감을 지니고 있다.

보철기술의 문제는 그 접근성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고 대체로 기득권을 지닌 사람들이 더 높은 접근성을 가져서 기득권을 더 강화한다는 데 있지 보철기술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다. 만약 우리가 보철기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종류의 유전적 개인차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할 이유가 없다. 만약 흑인이 정말로 유전적 차이에 의해 백인보다 지능이 낮다면 그것은 학교나 직업에서 차별해야할 논거로 쓰지말고 그만큼 보철기술을 적용해야할 논거로 적용하면 된다.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평균적으로 기하점수가 낮다. 이 차이가 선천적일 수도 있고 후천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황당하지만 여학생들이 FPS 게임을 10시간만 하면 이 차이가 사라진다는 보고가 있다. 보철기술은 생각보다 별 거 아닐 수도 있다. 혹시 아는가. 흑인들이 고등어 세 마리만 먹으면 인종차가 사라질지도.


태그 : 심리학, 진화,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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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도덕
분류없음 | 2007/11/09 09:18
Tit - for -Tat과 윤리
Tit - for -Tat과 윤리(2)

내가 이해하기로 기린아님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과학이 우리가 필요로하는 도덕을 정당화시켜주지 못한다. 되갚기 전략에 기초하여 협동을 설명하는 것은 단지 가족주의, 지역주의, 인종주의를 강화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필요로하는 도덕을 정당화하려면 종교나 전통 같은 비합리적 믿음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과학이 대세니까 미래는 암울하다.

1.

새끼 오리는 태어나서 36시간 내에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 다닌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어미 오리를 따라다니게 하여 새끼 오리의 생존률을 높이는 행동이다. 따라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새끼 오리가 이러한 행동을 보이게 된다. 물론 일부 재수없는 새끼오리는 지나가던 사람을 따라갈 수도 있다. 새끼 오리의 행동은 개체 수준의 인지 과정이고 이것이 확산되는 것은 유전자 수준의 진화적 과정이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르다.

되갚기 전략은 협동의 진화를 설명하는 상호 보완적인 모형들 중에 하나다. 그런데 새끼 오리가 어미를 따라 다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 어미를 따라다니는 게 아닌 것처럼 개체가 결과적으로 되갚기 전략을 쓰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실제로 되갚기 전략을 사용한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2.

기린아님은 "가족, 지역, 인종은, 태어날때 주어지는 것으로서, 인간이 가지는 관계중 가장 오래가는 것이다. 영원을 보장하는 종교를 제외할 경우(종교가 왜 협력이 잘 되는지 여기서 나온다.) 당연히 인간은 저런 오래가는 관계들을 중요시하게 된다."라고 하지만 이 주장은 두 가지면에서 잘못되었다.

첫째, 진화심리학의 입장에서 가족주의는 호혜적 이타성이 아니라 친족 선택에 속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되갚기 전략으로 협동을 설명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둘째, 가족은 둘째치고 지역, 인종, 종교는 인간이 중요시하는 관계가 아니다. 종교 갈등이 극심한 지역에서 3주짜리 캠프에서 다른 종교의 아이들을 섞어서 두 팀으로 만든 실험이 있다. 만약 기린아님의 주장대로라면 아이들은 3주짜리 캠프에서 같은 팀 아이보다 종교가 같은 아이들과 협동해야겠지만 팀 간의 갈등이 너무 심해져서 2주만에 실험이 파국적으로 종료되었다. 한 쪽 팀의 아이들이 밤 중에 부엌에서 칼을 훔쳐 다른 팀의 숙소에 침입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많은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보고되었다.

3.

유전자 수준의 진화적 과정과 개체 수준의 인지 과정부터 다르기 때문에 진화심리학에서 바로 어떤 종류의 윤리를 정당화할 수 없다. 진화심리학으로 어떤 윤리적 주장을 정당화하려면 "인간은 원래 그래"라는 식으로 말할 수 밖에 없는 데 그 '원래 그런 행동'이라는 게 설명수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화심리학이 지역주의나 인종주의를 지지하고 우리가 필요한 도덕을 지지하려면 종교나 전통같은 '비합리적 믿음'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상당히 이상하다. 일단 지역주의나 인종주의는 오늘날 과학에 의해서 지지되기 보다 종교나 전통에 기반하여 주장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만약 과학이 지역주의나 인종주의를 지지하고 그것에 반대하는 종교나 전통이 있다고 해도 이런 '비합리적 믿음' 또한 진화적으로 획득된 형질이기 때문에 만약 진화심리학을 근거로 지역주의나 인종주의을 지지하는 사람은 역시 종교나 전통 또한 지지해야 한다는 역설에 빠지기 때문이다.


태그 : 심리학,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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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은 그 다음의 문제
분류없음 | 2007/10/31 20:48
이인석은 "선형대수와 군"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저자는 창의성 교육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 창의성이 있다는 생각은 남들은 모두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과 동치이다. 앞 시대를 살다 간 수 많은 천재들의 업적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창의성만을 기대하는 사람을 우리는 '아마추어'라고 부른다. '프로'는 먼저 수많은 천재들의 업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창의성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그리고 수많았던 천재들의 업적을 일이년에 이해할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김태형복거일이 모두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law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 되었길 바란다.

태그 : 어리석음, 창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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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분류없음 | 2007/10/30 16:46
종종 "복거일을 존경한다"는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본다. 고종석이라는 유명하다는 사람도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내가 복거일의 글을 읽은 것은 잡문 몇 개 뿐인데 그 글에서 언어나 심리에 대해 인용한 내용은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다. 예를들어 영어공용화를 주장한 어떤 글에서 그는 촘스키를 자신의 논거로 삼는다. 아이들은 언어를 가르칠 수 없다는 게 촘스키의 주장인데 복거일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자고 주장하니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복거일을 존경한다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말 존경받을 사람은 복거일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아닌가.

태그 : 심리학, 어리석음, 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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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도덕
분류없음 | 2007/10/28 19:24
http://www.edge.org/3rd_culture/haidt07 ··· dex.html
http://www.edge.org/discourse/moral_religion.html

종교는 사람들을 더 도덕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도덕도 도덕 나름이다.

예를 들면,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 ··· %3D22767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188169

태그 : 도덕, 어리석음,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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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멍청이들
분류없음 | 2007/10/21 16:31
갓 태어난 병아리들도 매가 나타나면 숨고 기러기가 나타나면 그냥 잘 논다. 대단히 똑똑한 짓이지만 얘네들이 정말로 매랑 기러기를 구별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아래 그림에서 왼쪽을 머리로보면 기러기고, 오른쪽을 머리로 보면 매다. 요컨데 형태 자체만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 저 상태로 멈춰 있을 수 있는 매나 기러기는 없기 때문에 날아가는 방향을 보면 쉽게 판별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매와 기러기가 가진 식성의 차이는 몸통에서 날개의 위치를 다르게 만든다. 이것을 두고 날개의 위치가 새의 육식성에 대한 대리 기능을 수행한다고 한다. 따라서 병아리는 날개가 앞쪽에 달린 종류의 새들만 피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병아리를 잡아먹는 새들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대리 기능을 이용한 똑똑한 행동"은 사람에게도 있다. 샌 디에고와 샌 안토니오처럼 미국의 두 도시를 임의로 짝지어서 보여주고 어느 쪽이 인구가 더 많을 것 같냐고 물어보면 독일 학생들이 미국 학생보다 더 잘 판단한다. 미국 학생들은 독일 학생들보다 미국 도시에 대해 더 잘 아는데도 말이다.

독일 학생들은 미국 도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자신이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도시가 인구가 더 많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독일 학생들이 이름을 들어봤을 확률은 도시의 인구 규모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런 판단은 상당히 정확하게 작동한다. 이 경우에는 '이름을 들어봤다는 기억'이 '도시 인구 규모'에 대리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미국 학생들은 미국 도시들에 대해 정보가 많아서 이런 식으로 대리 기능을 이용할 수가 없다.

로봇 청소기가 공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인식하게 만들려면 센서도 좋아야 하고 고도의 인공지능도 필요하다. 어느 로봇 전문기업에서 만든 로봇 청소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냥 무조건 직진이다. 벽이 나오면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간다. 배터리가 떨어질 때까지 이짓을 계속한다. 로봇 청소기를 이렇게 만들면 값을 아주 싸게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예는 모두 인식주체(병아리, 독일학생, 로봇청소기)가 복잡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똑똑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식대상(매, 미국도시, 방)이 인식주체로 하여금 똑똑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대리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똑똑한 멍청이라는 형용모순을 가능케한다.



태그 : 심리학, 역설, 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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